낯
작가업을 하며 지낸 시간이 쌓일수록 작업실 밖에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 점차 늘었다.
혼자서 꾸려간 내 세계를 두고서 그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은 영 부끄럽지만
드러내고 공유하는 것이 이 일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.
그래서 나름대로는 매 순간 큰 용기, 작은 용기 다 내어 밖을 나선다.
그렇게 소위 사회인 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대화의 어딘가쯤에 나는 낯을 좀 가린다는 말을 해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. 그래야 내가 왜 표정이 어색한지 말을 편안하게 못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겼다. 지금 이 순간보다는 본래 좀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.
낯가리는 이윤정에 대해 재차 말하고 다니던 어느 날에 그 말에 대한 찝찝함을 느꼈는데
배려의 말인지.
양해의 말인지.
분위기를 풀어주는 말인지.
사회성이 부족함에 대해 사회성이 부족하게 말하는 말인지.
어쨌거나 긍정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찝찝함의 시작이었다.
꽤 오래 생각해 봤다. 낯을 가린다는 표현에 대해서. 결과적으로는 그 낯이 상대의 낯이라는 것에서 조금 무례함이 느껴졌다고 해야할까. 심지어는 가려내기까지.
대체 표현을 고민해 봤다. 동일한 의미로는 아마도 상황에 따라 내 낯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음이겠지.
그러면 낯을 가려서요. 대신에 낯을 잘 못 풀어요. 정도면 될까.
물론 나는 이런 신 표현을 입 밖으로 꺼내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테스트할 생각은 없다.
그냥 이제는 낯을 가린다는 표현을 삼가고 보여줄 수 있는 모습 그대로 그저 최선을 다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살아오고 있다.